나홀로 하버드’ 성공한 19살 ‘똑순이’
음대 가려 미국 중학교 진학→
진로 바꿔 한국행→외고 입학→공립학교로 전학→유학준비
경기여고 성소라양
15세 소녀는 1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 짐을 싸면서 대학공부는 미국에서 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소녀는 미국의 명문대인 하버드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아침 7시. 서울 경기여고 졸업반인 성소라(19)양은 부모,남동생과 함께 하버드대에서 날아온 이메일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합격일까,불합격일까. 아무도 먼저 열어보겠다고 나서질 못했다. 20여분을 그렇게보냈다. 드디어 이메일을 열었다.
‘Congratulations(축하합니다)!’성 양은 날듯이 기뻤고, 부모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미국 대학 진학 특별반도 없는 공립학교에서, 그것도 혼자 준비해 하버드대의 수시모집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점에서 기쁨은 더욱 컸다. 성양이 하버드대에 입학하기까지는 어린 나이에 비해 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희망을 잉태한 곡절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 되려 미국행
첫 번째 변화는 중학교 1학년 때. 5세 때부터 배운 바이올린 실력이 출중해 음악의 신동소리를 듣던 그녀는 음악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중학교를 자퇴했다. 주변에선 우려도 했지만 불과 1년 만에 고입검정시험에도 거뜬히 합격했다. 음악공부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다. 주변사람들의 추천으로 미국 명문 줄리아드 음대의 한국인 교수가 잠시 귀국했을 때 실력을 테스트했다.
“당장 보내주세요.”
그 한마디에 용기백배되어 세계적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때가 1999년 8월. 음대 입학을 위해 미국 정규과정인 중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대학 인근 도시의 중학교를 다니며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대학에 가서 한국인 교수로부터 바이올린을 사사했다. 학교에선 버스 타고 와서 바이올린 배우는 아이로 알려졌다. 게다가 잘 웃는 얼굴로 ‘미스 스마일’이란 애칭도 얻었다. 늘 웃는 얼굴의 낙천적 기질로 어려움을 쉽게 극복해 내는 것은 그녀의 강점이다.
8학년(한국식 중학교 2년)에 입학한 그녀는 이듬해 학교도 수석졸업했다. 늘 1등 자리를 놓치지 않던 미국 남자학생을 보기좋게 따돌렸다. 졸업식 고별사도 그녀의 몫이었다.
“처음엔 10시간씩 바이올린 연주하느라 영어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 어려움을 극복했어요.” 나중엔 미국 친구들이 자신의 작문 숙제가 제대로 되었냐고 물어올 정도였다.
영어공부는 특별한 비결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문법은 책을 많이 읽다보면 저절로 터득된다는 것. 이제 고교에 진학해서 예정된 코스를 밟으면 된다. 하지만 몸과 함께 정신도 성숙해지면서 쉴틈없이 달려온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해 불현듯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정말 음악을 사랑하나’‘평생 음악가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은 이어졌다. 드디어 그녀는 어린 나이로선 쉽지 않은 결심을 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 다만 다른 길을 걷되 음악에서 손을 놓지는 않겠다.’
자식의 갑작스런 변화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부친 성수일(56)씨. 수원대 생명과학과 교수인 부친은 “처음엔 너무 아쉬웠지만 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마음을 다졌다”고 했다. 반면 서울여대 수학과 교수인 모친 권계화(49)씨는 딸의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공부 분위기’싫어 공립학교로 전학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어디부터 시작할까. 일단 고교는 한국에서 다니기로 했다.
“지옥 같다는 고3 생활을 한국에서 또래들과 같이 해야 진정한 한국인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고교를 다녀야 무슨 일을 하든 한국인으로서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요.”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부모와 함께 숙의한 끝에 모 외고에 들어가기로 했다. 미국 대학 진학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나오진 않았지만 영어엔 자신이 있어 영어특기생을 뽑는 과정에 지원했다.
영어는 이미 토익점수가 970점으로 최상위 수준이었다. 문제는 국어였다.
고사성어를 밤새워 외웠다.
결과는 당당한 합격. 중국어 전공으로 시작한 외고 생활은 처음엔 순조로웠다. 중학교 동창생이 한 명도 없었지만 처음부터 반장으로 뽑혔다.
하지만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에 다시 의문의 꼬리가 이어졌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생활, 밤늦도록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 좋아하는 바이올린을 손에 들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너무 괴로웠다. 이대론 안된다. 부모도 같은 생각이었다. 집 근처의 공립학교인 경기여고로 전학갔다. 공립학교 다니면서 미국 대학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2학기 첫 등교날, 학생들이 바느질을 배우는 것이 신선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월드컵 때는 축구도 하는 등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미국 대학이 요구하는 것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우선 학업 능력.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미 대입수학능력시험)1은 1600점 만점에 1520점이란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과목별로 3과목 이상을 해야하는 SAT2에선 문법 및 작문으로 구성된 라이팅(writing)과 수학은 필수.선택과목으론 물리(만점은 모두 800점)를 택했다. 수학에선 만점을 받고,라이팅은 740점, 물리는 750점을 받았다. 라이팅은 700점이 넘으면 국제적 수준이라고 한다. 수능을 위한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는 그녀도 이들 과목에선 부모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수학은 교수인 어머니에게서,
물리는 부친 동료 교수에게 틈틈이 배웠다. 하지만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주변의 도움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제출할 필요는 없지만 토플 시험도 준비했다. CBT기준으로 290점을 받았다. 과거 시험으론 670점 수준이다. 대학수강과목 학점을 미리 따는 AP에서는 미시경제학과 미적분학 학점을 땄다. 대학당국은 고교에서 제공하지 않은 이들 과목을 통과하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고 한다.
고교 시절의 내신성적도 중요하다. 반에선 1등을 했으며, 전교 3% 안에 드는 실력이었다. 전교 석차가 다소 떨어진 것은 미국 대학 입학에 필요한 시험을 보면서 학교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중요한 준비자료는 에세이. ‘나의 야망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라고 시작하는 메인 에세이의 제목은 ‘정복자’였다. 또 자신의 독특한 이력은 ‘구불거리는 길위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에세이를 썼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서술하는 에세이에서는 고교시절 경험한 봉사활동을 가감없이 서술했다. 탈북자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위안부 할머니와 자매결연을 맺어 꾸준히 찾아가 일상생활을 도와주었다. 지난해 2월엔 필리핀의 가나안농군학교에서 1주일 생활을 해보기도 했다. 어머니 권 교수는 “미국 대학은 아무런 증빙서류도 요구하지 않지만 봉사활동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바이올린 연주 CD로 만들어 제출
이들 필수 자료 외에 부가적으로 제출한 것에 바로 그녀의 강점이 숨어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CD로 만들고, 미술학원 다니며 실력을 쌓은 동양화 그림도 수십 장 슬라이드에 담았다. 또 모교를 영어로 소개하는 팸플릿을 스스로 만들었다. 미국 대학들은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버드에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공을 정해요. 저는 문화인류학,국제학을 전공할 계획입니다.”그의 전공 계획은 물론 미래의 인생 목표와 관련이 있다.
“고1 겨울 방학 때 베트남에서 베트남통일 과정을 잠시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지난해 여름에는 중국 옌볜(延邊)도 방문해 봤어요. 미국쪽에 기울어진 관심이 아시아로 옮겨지는 계기가 된 것이죠.”그녀는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국제무대에서 한국, 한국 정부, 한국 기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알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 문화인류학과 국제학을 공부하겠다는 설명이다.
대학 이후 진학하는 로스쿨이나 비즈니스스쿨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미국 대학 간다며 다른 공부를 할 때 ‘수능지옥’에 시달리는 친구들과 갈등은 없었을까. 궁금해졌다.
“솔직히 제가 미국 대학가는 것은 부모님 잘 만난 ‘특권’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어떤 때는 미안한 생각도 들어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얘기했어요. 고1 때와 고3 때 담임인 하희숙 선생님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어요. 엄마에게도 ‘고마워요’란 말을 자주 했죠. ‘그래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한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자. 그것이 주변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도 잘해 2학년 때는 반장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 미국 대학 진학 특별반이 없고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도 없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입시에 도움되는 정보를 얻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어려움은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련학원을 찾아다니면서 해결해 나갔다.
수능 준비는 하지 않고 모의고사는 몇 번 보았다는 그녀에게 “수능을 보지 않아 국내 대학 진학은 불가능한데 하버드대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고 물었다. 그녀는 “어차피 미국 대학을 준비했으니까, 올 4월까지 여러 대학의 정시 모집에 응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의 1년 학비는 4만달러(약 4700만원). 생활비까지 더하면 5000만원 넘게 든다. 그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장학금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삼익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방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 ‘서울에서 하버드까지’ ‘하버드대학 입학생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등 하버드 대학 관련 책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전문가가 되기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19세 대학 새내기의 해맑은 웃음 뒤에 숨어있는 그녀의 무서운 실력과 의지는 앞으로 이국 생활과 명문대학 학업에서 부딪칠 수없는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대우(bigm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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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가려 미국 중학교 진학→
진로 바꿔 한국행→외고 입학→공립학교로 전학→유학준비
경기여고 성소라양
15세 소녀는 1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 짐을 싸면서 대학공부는 미국에서 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소녀는 미국의 명문대인 하버드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아침 7시. 서울 경기여고 졸업반인 성소라(19)양은 부모,남동생과 함께 하버드대에서 날아온 이메일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합격일까,불합격일까. 아무도 먼저 열어보겠다고 나서질 못했다. 20여분을 그렇게보냈다. 드디어 이메일을 열었다.
‘Congratulations(축하합니다)!’성 양은 날듯이 기뻤고, 부모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미국 대학 진학 특별반도 없는 공립학교에서, 그것도 혼자 준비해 하버드대의 수시모집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점에서 기쁨은 더욱 컸다. 성양이 하버드대에 입학하기까지는 어린 나이에 비해 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희망을 잉태한 곡절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 되려 미국행
첫 번째 변화는 중학교 1학년 때. 5세 때부터 배운 바이올린 실력이 출중해 음악의 신동소리를 듣던 그녀는 음악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중학교를 자퇴했다. 주변에선 우려도 했지만 불과 1년 만에 고입검정시험에도 거뜬히 합격했다. 음악공부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다. 주변사람들의 추천으로 미국 명문 줄리아드 음대의 한국인 교수가 잠시 귀국했을 때 실력을 테스트했다.
“당장 보내주세요.”
그 한마디에 용기백배되어 세계적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때가 1999년 8월. 음대 입학을 위해 미국 정규과정인 중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대학 인근 도시의 중학교를 다니며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대학에 가서 한국인 교수로부터 바이올린을 사사했다. 학교에선 버스 타고 와서 바이올린 배우는 아이로 알려졌다. 게다가 잘 웃는 얼굴로 ‘미스 스마일’이란 애칭도 얻었다. 늘 웃는 얼굴의 낙천적 기질로 어려움을 쉽게 극복해 내는 것은 그녀의 강점이다.
8학년(한국식 중학교 2년)에 입학한 그녀는 이듬해 학교도 수석졸업했다. 늘 1등 자리를 놓치지 않던 미국 남자학생을 보기좋게 따돌렸다. 졸업식 고별사도 그녀의 몫이었다.
“처음엔 10시간씩 바이올린 연주하느라 영어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 어려움을 극복했어요.” 나중엔 미국 친구들이 자신의 작문 숙제가 제대로 되었냐고 물어올 정도였다.
영어공부는 특별한 비결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문법은 책을 많이 읽다보면 저절로 터득된다는 것. 이제 고교에 진학해서 예정된 코스를 밟으면 된다. 하지만 몸과 함께 정신도 성숙해지면서 쉴틈없이 달려온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해 불현듯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정말 음악을 사랑하나’‘평생 음악가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은 이어졌다. 드디어 그녀는 어린 나이로선 쉽지 않은 결심을 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 다만 다른 길을 걷되 음악에서 손을 놓지는 않겠다.’
자식의 갑작스런 변화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부친 성수일(56)씨. 수원대 생명과학과 교수인 부친은 “처음엔 너무 아쉬웠지만 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마음을 다졌다”고 했다. 반면 서울여대 수학과 교수인 모친 권계화(49)씨는 딸의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공부 분위기’싫어 공립학교로 전학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어디부터 시작할까. 일단 고교는 한국에서 다니기로 했다.
“지옥 같다는 고3 생활을 한국에서 또래들과 같이 해야 진정한 한국인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고교를 다녀야 무슨 일을 하든 한국인으로서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요.”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부모와 함께 숙의한 끝에 모 외고에 들어가기로 했다. 미국 대학 진학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나오진 않았지만 영어엔 자신이 있어 영어특기생을 뽑는 과정에 지원했다.
영어는 이미 토익점수가 970점으로 최상위 수준이었다. 문제는 국어였다.
고사성어를 밤새워 외웠다.
결과는 당당한 합격. 중국어 전공으로 시작한 외고 생활은 처음엔 순조로웠다. 중학교 동창생이 한 명도 없었지만 처음부터 반장으로 뽑혔다.
하지만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에 다시 의문의 꼬리가 이어졌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생활, 밤늦도록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 좋아하는 바이올린을 손에 들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너무 괴로웠다. 이대론 안된다. 부모도 같은 생각이었다. 집 근처의 공립학교인 경기여고로 전학갔다. 공립학교 다니면서 미국 대학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2학기 첫 등교날, 학생들이 바느질을 배우는 것이 신선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월드컵 때는 축구도 하는 등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미국 대학이 요구하는 것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우선 학업 능력.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미 대입수학능력시험)1은 1600점 만점에 1520점이란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과목별로 3과목 이상을 해야하는 SAT2에선 문법 및 작문으로 구성된 라이팅(writing)과 수학은 필수.선택과목으론 물리(만점은 모두 800점)를 택했다. 수학에선 만점을 받고,라이팅은 740점, 물리는 750점을 받았다. 라이팅은 700점이 넘으면 국제적 수준이라고 한다. 수능을 위한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는 그녀도 이들 과목에선 부모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수학은 교수인 어머니에게서,
물리는 부친 동료 교수에게 틈틈이 배웠다. 하지만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주변의 도움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제출할 필요는 없지만 토플 시험도 준비했다. CBT기준으로 290점을 받았다. 과거 시험으론 670점 수준이다. 대학수강과목 학점을 미리 따는 AP에서는 미시경제학과 미적분학 학점을 땄다. 대학당국은 고교에서 제공하지 않은 이들 과목을 통과하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고 한다.
고교 시절의 내신성적도 중요하다. 반에선 1등을 했으며, 전교 3% 안에 드는 실력이었다. 전교 석차가 다소 떨어진 것은 미국 대학 입학에 필요한 시험을 보면서 학교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중요한 준비자료는 에세이. ‘나의 야망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라고 시작하는 메인 에세이의 제목은 ‘정복자’였다. 또 자신의 독특한 이력은 ‘구불거리는 길위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에세이를 썼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서술하는 에세이에서는 고교시절 경험한 봉사활동을 가감없이 서술했다. 탈북자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위안부 할머니와 자매결연을 맺어 꾸준히 찾아가 일상생활을 도와주었다. 지난해 2월엔 필리핀의 가나안농군학교에서 1주일 생활을 해보기도 했다. 어머니 권 교수는 “미국 대학은 아무런 증빙서류도 요구하지 않지만 봉사활동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바이올린 연주 CD로 만들어 제출
이들 필수 자료 외에 부가적으로 제출한 것에 바로 그녀의 강점이 숨어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CD로 만들고, 미술학원 다니며 실력을 쌓은 동양화 그림도 수십 장 슬라이드에 담았다. 또 모교를 영어로 소개하는 팸플릿을 스스로 만들었다. 미국 대학들은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버드에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공을 정해요. 저는 문화인류학,국제학을 전공할 계획입니다.”그의 전공 계획은 물론 미래의 인생 목표와 관련이 있다.
“고1 겨울 방학 때 베트남에서 베트남통일 과정을 잠시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지난해 여름에는 중국 옌볜(延邊)도 방문해 봤어요. 미국쪽에 기울어진 관심이 아시아로 옮겨지는 계기가 된 것이죠.”그녀는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국제무대에서 한국, 한국 정부, 한국 기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알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 문화인류학과 국제학을 공부하겠다는 설명이다.
대학 이후 진학하는 로스쿨이나 비즈니스스쿨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미국 대학 간다며 다른 공부를 할 때 ‘수능지옥’에 시달리는 친구들과 갈등은 없었을까. 궁금해졌다.
“솔직히 제가 미국 대학가는 것은 부모님 잘 만난 ‘특권’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어떤 때는 미안한 생각도 들어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얘기했어요. 고1 때와 고3 때 담임인 하희숙 선생님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어요. 엄마에게도 ‘고마워요’란 말을 자주 했죠. ‘그래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한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자. 그것이 주변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도 잘해 2학년 때는 반장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 미국 대학 진학 특별반이 없고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도 없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입시에 도움되는 정보를 얻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어려움은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련학원을 찾아다니면서 해결해 나갔다.
수능 준비는 하지 않고 모의고사는 몇 번 보았다는 그녀에게 “수능을 보지 않아 국내 대학 진학은 불가능한데 하버드대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고 물었다. 그녀는 “어차피 미국 대학을 준비했으니까, 올 4월까지 여러 대학의 정시 모집에 응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의 1년 학비는 4만달러(약 4700만원). 생활비까지 더하면 5000만원 넘게 든다. 그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장학금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삼익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방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 ‘서울에서 하버드까지’ ‘하버드대학 입학생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등 하버드 대학 관련 책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전문가가 되기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19세 대학 새내기의 해맑은 웃음 뒤에 숨어있는 그녀의 무서운 실력과 의지는 앞으로 이국 생활과 명문대학 학업에서 부딪칠 수없는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대우(bigm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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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황완식
글쓴이 : wansikhw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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